[민들레 칼럼] 공공임대 공급 축소에…'비주택 거주자' 다시 늘어나
조회 : 454 / 등록일 : 23-08-01 16:35
공공임대 공급 축소에…'비주택 거주자' 다시 늘어나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여관,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 이른바 비(非)주택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이 4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차마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 거처하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했는데, 공공임대 주택을 확충해 이에 대응해야 하는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공공임대 주택 예산을 줄였다.
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주택 밖 서민들
3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 가구원은 182만 9000명으로 전년(178만 8000명)보다 무려 4만 1000명(2.3%)이나 늘었다.
통계청은 가구의 거처를 '주택'과 '주택 이외의 거처'로 분류하고 있다. '주택 이외의 거처'는 한 개 이상의 방과 부엌, 독립된 출입구 등 주택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거주 공간을 의미한다. ‘주택 이외의 거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오피스텔, 여관 등 숙박업소의 객실, 기숙사 및 특수 사회시설,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이다. 오피스텔 거주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주거 취약 계층에 속한다.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 가구원은 2018년(199만 5000명) 정점을 찍은 뒤 3년 연속 줄었다가 지난해 다시 반등했다. 아래 표를 보면 ‘주택 이외의 거처’가구원 수의 증감 추이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집값 하락에도 빈곤층의 주거 환경이 더 악화한 셈인데, 전세 사기 사태 등이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른바 보증금을 떼먹은 악성 임대인을 뜻하는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의 보증사고 액수는 4382억원에 달했다. 보증사고 액수는 2018년 30억 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 504억 원, 2020년 1871억 원, 2021년 3555억 원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줄이는 윤 정부
시장에서 집다운 집을 구하지 못하고 축출당하는 서민들이 많다면 마땅히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들을 포용해야 맞다. 하지만 놀랍게도 윤석열 정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지난 1월 윤석열 정부는 '서민·취약계층 주거복지 강화 방안'을 내놓고 임기 내 공공임대주택 50만 호, 공공분양주택 50만 호 총 10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호언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문재인 정부 기간보다 공공주택 사업의 규모가 제법 크게 늘어난 듯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2018~2022) 동안 공공임대 65만 호(건설형 35만 호, 매입형 13만 호, 전세형 17만 호)와 공공분양 15만 호를 각각 공급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공급계획은 공공분양 50만 호와 공공임대 50만 호(건설형 17.5만 호, 매입형 17.5만 호, 전세형 15만 호)로 문재인 정부와 비교할 때 공공임대는 무려 15만 호가 줄어드는 대신(특히 공공임대주택의 본령이라 할 건설형이 문재인 정부 기간과 비교할 때 반토막이 났다) 공공분양은 무려 35만 호가 늘어난다. 공공분양은 공공임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공공이라는 말이 붙었을 뿐 공공분양은 수분양자가 시세차익을 누리고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가 입만 열면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문재인 정부와 비교할 때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논쟁의 여지 없이 퇴행이고 명백한 개악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퇴행 정책은 벌써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지난 6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LH는 '2023년 기존 주택 전세 임대 사업계획'과 관련해 5월 2일 각 지역본부로 '전세 임대 신규(수시) 접수 중단 알림' 공문을 전달했다. 해당 공문의 핵심 내용은 2023년 전세 임대 계약 실적이 계획 대비 초과됨에 따라 주택도시기금 예산의 조기 소진이 예상돼 신혼부부, 청년, 보호종료 아동 등에 대한 전세 임대 입주자 수시모집 접수를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모집 중단 대상에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이하의 저소득층 신혼부부, 한부모가족, 기초생활보장 및 차상위계층 청년은 물론 아동복지시설 퇴소 청년을 포함한 보호종료 아동도 포함됐다. 즉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수요 요구는 높은데 공급 가능 물량이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2023년 주택도시기금 중 공공임대 및 공공분양 관련 예산 5조 6400억 원이 대폭 삭감되면서 예견됐었다. 예산 감소에 따라 공공임대주택 전세 신규 공급 물량은 2022년 공급 물량 대비 약 6만 6000호가 줄고 이번 신규 모집이 중단된 전세 임대 공급량 또한 4만 1500호에서 3만 호로 감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가의 헌법적 의무를 다하라는 주문은 사치
윤석열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통 관심이 없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분명한 적의(敵意)를 보였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12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 패널들과 함께 생방송으로 진행한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에 관련해 발언한 사실이 있다.
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을 굉장히 선(善)으로 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만.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하다 보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상당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 되고, 전반적으로 우리 경제의 부담 요인으로, 또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저희는 민간과 공공임대를 잘 믹스해서 공급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참으로 놀랍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완벽한 무지를, 확신을 가지고 주권자 앞에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체는 압도적으로 LH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은 극히 미미하고 따라서 납세자 부담 운운하는 소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다. LH는 신도시 및 택지개발지구 등을 개발한 후 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얻은 이익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납세자 부담이 거의 없는데 경제의 부담 요인이 될 까닭이 없다.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있을 때 정부가 과감히 공공임대주택 발주를 크게 늘리면 건설경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기 위축 요인 운운하는 소리도 터무니 없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본격화된 이래 여러 보수 정부가 집권했지만,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후퇴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에 동의했고, 부족하나마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민간 임대차시장에서 소외된 주거빈곤층에게 양질의 주거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전체 주택시장의 주거안정성을 제고시킨다는 점에 모든 정부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이게도 윤 대통령은 한국사회가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누대에 걸쳐 이룩한 사회적 합의를 헌식짝처럼 버리면서 공공임대주택을 세금 먹는 하마이자 경제 부담 요인이자 경기 위축 요인으로 폄하하고 있다.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불문가지다.
대한민국 헌법 35조 3항에는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 좋아하는 윤 대통령도 아마 알 것이다. 하지만 취임 이후 보인 윤 대통령의 행보나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반감 등을 감안할 때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헌법의 명령을 이행하라고 윤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건 무망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분명한 건 시장에서 마땅한 거처를 구하지 못하는 주권자들에게 적정한 거처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